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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수필

지금 이 자리 있기까지

by 안산학생 2020. 9. 29.

 - 전문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열심히만...) 이상하게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내신도 5~6등급 투성이였고 수능 성적도 5~7등급 뿐이였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때 담임 쌤이 "니가 하는 공부는 대학생이 하는 공부법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성적이 안좋다 보니, 초-중-고등학교때 "너 공부 못하면, 저기 산에 있는 안산대학교 간다." 라고 했는데 그 학교를 내가 갔다. 그냥 성적에 맞춰서 가는데 이왕 갈 거 비전이 있어보이는 글로벌IT비즈니스과로 진학했다. 컴퓨터와 경영을 배우는 학과라고 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추가합격)
 
 학교는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였다. 무서운(?) 친구들도 많았고, 공부하자는 분위기는 더욱 아니였다. 그냥 나도 분위기 맞추며 생활하다 보니 무서운(?) 친구들이랑도 친해지고 잘 지냈던 것 같다... 친구들하고도 재밌는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나 공부할 때는 고등학교 때 처럼 열심히(?) 했다. 시험기간에는 고등학교 때 처럼 시험 공부를 했다.
 
 첫 중간 고사가 끝나고, 과목 별로 성적 발표를 하는데... 모든 과목에서 1등이였다. 그리고 기말고사도 전 과목 1등을 했고 성적은 4.5/4.5가 나왔다... 이때 고등학교 때 담임 쌤이 이야기 했던 멘트가 생각났었다..
 
 친구들의 시선이 그때부터 달라졌다. 놀때도 분명히 자기들과 같이 놀았는데 누구는 2점대, 누구는 1등 하는 것이었다. 그때 며몇 친구들은 나에게 같이 공부하자고 하기도 했고, 실제로 스터디를 만들어 5명 친구들과 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 덕에 나는 1학년 2학기도 4.5/4.5를 맞았다.
 
 성적도 잘 나오고 자신감이 붙어있었다. (물론 안산대라는 우물 안에서만.) 그 때 우연히 듣게된 연계편입. 안산대학교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연계 편입이란 제도가 있었다. 편입은 영어 시험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편입 시험이 별도로 없고 성적+면접으로만 가는 전형이였다. 나는 이 연세대로 학벌세탁(?)을 꿈꿨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군대이야기는 짧게 하려고 한다. 군대에서도 연세대 원주캠을 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우연히 내가 있던 부대로 레바논 해외 파병군들이 훈련을 왔다. 그 모습을 보고 해외 파병을 지원했고 나는 UN군으로 레바논 동명부대 14기로 7개월 간 파병을 다녀왔다. 이 때 파병은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큰 스펙이 되었다.
 
 (참고로 나는 레크레이션 사회자 일을 19살 때 부터 시작해서 돌잔치, 결혼식, 고희연과 같은 행사를 현재까지 하고 있다. 약 900회가 넘는 행사를 진행했고, 학비 이외의 생활비 마련에 큰도움이 되었다. 사회자 일도 정말 큰 스펙으로 적용했다.)
 
 전역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똥통(?)이 되었다. 아무기억이 나질 않아서, 학교다니기 전까지 학원을 통해 복습, 예습을 하려 했다. 물론 파병 다녀와서 1300만원에 가까운 현금이 있었다. (부모님 다드리고 나는 노트북 하나와 학원 한개를 등록했다)
 
 학원은 그때 당시 영업에 속아 I*뱅* 라는 학원을 수강했다. 3과목 수강하는데 120만원이였던가.. C언어, JAVA, C++을 수강했는데, C언어 강사님이 정말 최고였다. 그때 C언어를 처음 접했는데, 지금 알고리즘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정도였다. 물론 그 강사님도 학원 욕하며 관두셨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똥통(?)을 걷어차고 학교에 복귀했다. 그때도 4.5/4.5를 맞았다. 공부와 동시에 이런 저런 스펙쌓기 놀이에 빠져서 발표 대회도 나가서 대상받고 지역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다. 그때 당시 장학금은 학비를 초과해서 받을 수 없어서 상품으로 엄청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평점 4.5/4.5 를 갖고 연세대 원주캠퍼스 서류를 넣고 당당히 통과한 뒤, 면접을 봤다. 면접은 영어 면접, 인성 면접이였는데. 영어 지문을 독해하는 것이였다. 나는 1도 몰랐고, 얼버무리다가 교수님들께 혼났다. 하지만 성적을 본 교수님들께서 "이 학교와서도 열심히 하면, 넌 될 거다" 라고 하시고... 떨어진 줄 알았던 나는 당당히 합격했다.
 
- 4년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분교라는 큰 단점으로 욕을 많이 먹지만, 그거 빼고 정말 좋은 학교였다. 학교앞에 큰 호수가 있어서 view도 멋있고... 교수님들은 전부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출신이라, 교수진들도 최고였다.
 
 동네 전문대에서 연세대학교(원주)를 오니 수준이 달랐다. 정말로 쫓아가기 바빴다. 난생 처음 C-라는 성적도 받을 정도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 때 좀 더 성실했다면, 취준할 때 면접준비에 수월했을 것 같다. 근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어려웠고 학교 적응에도 쉽지 않았다.
 
 과제는 편입 선배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들을 이용했고... 시험은 벼락치기로 공부했었다. 3,4학년 다 그랬던 것 같다. 나름 4년제의 재미에 빠진 것도 있었다. 전문대에서는 하지 못했던 대외활동, 교내 활동들을 즐기며 나름(?)의 4년제 대학 생활을 즐겼다. 성적은 3.55/4.3 으로 졸업했다.
 
 이 때 교내 기자단 활동을 했는데, 컴퓨터공학과 이다보니 관련 졸업생 혹은 학우의 성공스토리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선배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그 분은 현재 삼성SDS에 근무하고 계신다. 그 분은 2학년 때 C 프로그래밍 성적 C-를 받고,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었던 분인데... 어떤 선배의 권유로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함께 준비하며 수상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선배님은 SW마에스트로에 들어갔고 최종9인에 선발되어 3000만원을 받았고 해외 연수도 다녀오셨다. 이 SW마에스트로에 대해 취재하며 선배님께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 취업 준비 1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졸업 시즌 이였다. 너무 늦었었다...
 
 취업을 하려 했더니,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웹? IOT? 보안? 네트워크? 뭐하나 제대로 할줄 아는 게 없었다. 찾다 찾다 직업훈련소를 찾았다... 국비지원 교육을 받으면 취업이 수월하다는 것을 듣고 가산에 위치한 KOSTA라는 국비지원 학원을 찾았다. 여기서 약 4개월 간 웹 Spring 과정을 수강 했고, 수강이 끝날 때 쯤 집에서 가까운 위치의 중소기업에 웹 개발자로 취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노력을 비추어 볼 때 최소 3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싶었다.
 
 꿈이였다. 중소 기업 면접을 50여 곳 정도 봤는데, 3000만원 불렀다가 면전에서 개무시를 당했다. "감히 너 따위가 3천이라고? 나도 못받는데." 나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였다. 그렇게 난 3000에서 점점 내려갔다.
 
 그래서 결국 온 곳이 2640이였다. 면접 때 연봉이 2640이라고 해서 다시 한 번 물어봤다. 2600이면 2600이지 40은 뭐냐고.. 그랬더니 계산기 두들겨서 220만원*12를 하니 2640이 나오는 것이였다.
 
 오케이. 회사도 깔끔하고, 괜찮다 싶어 입사를 했다. 회사는 상하수도 시설에서 사용하는 웹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DB에 값들이 들어오면 사용자 원하는 값으로 웹에 차트와 표에 표시해주고 또 원하는 기능을 개발하는 SI, SM업무였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월급이 들어왔을 때... 10만원이 비었다. 사유를 물었더니, 면접 때 잘못 말했다고 한다.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때 나는 패기있게 "저 퇴사 할 수 도 있어요." 라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할 줄 아는게 없던 나는 퇴사는 꿈도 못꾸고... 계속 다녔다.
 
 다니다 보니 중소 기업의 단점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났다. 난 디자인은 잼병인데, 웹 디자인을 자꾸 시켰고 (디자인 외주하면 돈드니까...) 웹 기술을 모르는 이사가,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그리고 업체 특성 상 지방으로 많이 다녀야했는데, 먼 거리인지라 하루 500km 이상 운전 한 적도 있다. 과연 내가 운전기사 인가? 개발자 인가? 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 취업 준비 2 
 중소 기업에 5개월 정도 다녔을 때 부터... 이렇게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대기업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삼성'을 목표로 삼았다. 삼성의 입사 기준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평일에는 회사 생활을 하고 주말을 이용해서 opic 학원을 다녔다. 한달만에 opic 기준을 맞췄고, 두 번째로 알고리즘을 준비했다. 이 때 당시 알고리즘을 정말 1도 몰랐었고..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또 영업을 당해서 알고리즘을 가르쳐주는 학원 (알X)을 다녔다. 운이 좋게도 내가 다닐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의 1:1 수업을 받았다.
 
 3개월 정도 수강했었다. 알고리즘이라고는 if, for문밖에 못쓰던 그 때의 나는 기본적인 BFS, DFS도 수월하게 했다. 학원진도는 모두 완료해서 그때 부터 백준에 있는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달 여 만에 삼성A형을 취득했다.
 
 그리고 중소 기업에 1년이 되기 한달 전, 팀장과 크게 싸웠다. 그리고 그때는 패기있게 "저 퇴사할게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달 근무 하고 딱 1년 채우고 퇴사했다.
 
 퇴사하고 취업 준비를 제대로 했다. 면접 준비까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서류에서부터 탈락이 거듭됐고, 삼성 코테는 완벽히 무너졌다. 절망에 빠져있던 순간, 오픈채팅방을 알게 되었고 그 때 당시 삼성SDS(가등), 알고리즘스터디(감기귤) 방을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정보들을 많이 얻었다. 그리고 방장/부방장님 며몇 현직자 분들께 서류 첨삭도 요청드리고 노하우들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방에서 만난 분들과 알고리즘 스터디를 하며 실력을 키웠다. 이때 같이 취준하던 '재밌는DP', '볼프람', 현직자셨던 '구글은꼭' 그리고 며몇 분들.. (내가 만든 스터디에서 output : 삼성전자 3, 네이버 계열사 1, 카카오 1, ibk시스템 1, 이베스트투자증권 1)
 
 그때 이후 부터 서류 합격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 이후 부터 터진 일본 사태... 그리고 중국 우한 폐렴(코로나19)...
 
 나는 준비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뽑는 인원은 정말 극소수였었다.
 
 서류만 100곳은 넣은 것 같다.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썼다. '이베스트투자증권'도 이 중 하나다. 물론 증권사 중에서 입지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곳이였고... 사실 고등학교 때 부터 경제학 쪽으로 가고 싶었었다. 하지만, 증권사는 애초에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에.. 역시나 안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100번 떨어지나 101번 떨어지나.. 뭐 다를게 있나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를 제출했고, 3차 최종면접 까지 합격해 현직장으로 다니고 있다.
 
 구체적인 연봉을 말할 수는 없지만 영끌로 하면 전직장 연봉의 2배를 이뤘다.
 
 이렇게 내 취준 생활이였다. 간략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했는데, 길이 엄청 기네... 취준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기하지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한없이 작아지는 자존감... 그리고 나에게 점점 차가워지는 가족들의 시선과 태도... 다 겪는다. 이거에 포기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작은 시간이고 작은 시련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의 빛날 일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견뎌서 성공하길 바란다...
 
 


[2020.12.19 작성]
 
 - 위에 글 쓴 그 이후..... (삼성 합격 후기)
 중소 퇴사 이후 삼성을 목표로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삼성'을 준비하면 모든 회사가 준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삼성을 목표로 준비하며 운이 좋게 '이베스트투자증권'에 입사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곳은 계속 마음 속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준비해온 내용도 있고... 아직 기억속에 남아있어 삼성SDS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첫번째 서류 단계... 나는 삼성을 3번 지원했다. 첫번째 쓴 서류를 2번 더 이용했다... 자기소개서 단 한 부분도 바꾸지 않았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재직 내용만 추가했다.
 
 두번째 코딩테스트 단계... 사실 코테 2주 전부터 다시 한 번씩 삼성 기출을 풀어봤다. 하루에 1~2문제씩... 하지만 회사 퇴근 이후 준비하는게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답만 보거나, 아예 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솔직히 준비를 많이 한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솔직하게는, 큰 기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회사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대충해서 삼성을 붙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나는 약 2년의 시간이 넘게 삼성을 목표로 준비했었다. 그렇게 2주 정도 기출 정도만 보고 시험장에 갔다. 3번이나 지원해서 그런지 코테 문제가 예상이 됐다.. '이번엔 ~~~~이러한 문제가 나오겠지 ㅋㅋㅋ' 하고 갔는데 진짜 그 문제가 나왔다; (증인이 있음) 근데, 그래도 쉽게 풀리진 않았다.. 1시간 48분이 소요됐고, 2번째 문제 보자마자.. '이건 내가 풀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고 쿨하게 나왔다. 결과는 합격이였다...
 
 세번째 면접 단계... 늘 코테에서 떨어져서, 삼성 면접 경험은 단 한번도 없어 너무 긴장됐었다. 코로나로 인해 그간 진행해온 면접과 다르게 축소화 된 느낌이었다. 기존 삼성은 창의,인성,직무 3개의 면접을 봤고... 직무 면접은 카테고리를 택해서 문제를 푸는 방식이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의면접이 없어졌고, 직무 또한 문제풀이 없이 면접관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었다. 면접 준비는 돌파고님과 함께 준비했다. 도중에 돌파고님이 라인에 합격해서........ 혼자하게 되었지만, 돌파고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ㅜㅜ.. 면접의 경우 예상 질문 리스트를 작성했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계속 혼자서 답변하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 요즘 코로나때메 마스크를 끼고 있어 입으로 씰룩씰룩해도 사람들이 볼 수 없으니... 더 편하게 면접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 준비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저녁먹고 잠들어 다음 날이 된 경우도 허다했고... 직장이 있다보니 딱히 탈락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면접준비도 어떻게 보면, 다른 취준생만큼 엄청나게 열정을 갖고 한 것은 아닌거 같다. 개인적으로 면접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MC 일을 8년이나 했으니.. 그냥 내 스스로 이야기만 준비되면 될 것 같아, 예상 질문을 키워드 형식으로 정리해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연습만 했었다. 그리고 직무 면접은 그동안 준비해온 CS 필기집을 꺼내 다시 한 번 리마인드 식으로 공부했다.
 
 면접 당일, SDS건물에 갔는데... 사람들이 입장 대기를 하고 있었다. 딱 보는데 너무 앳되보이더라... 어린이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경쟁자니까.. 선의의 경쟁을 하자라는 눈빛을 보내줬다..
 
 면접 대기소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내 차례가 되서 면접장에 들어가서 면접을 시작했다... 화상 면접이라 안내자가 채팅창을 켜주고 안내자는 밖에서 대기한다. 임원 면접을 먼저 보고 안내자가 다시 들어와서, 직무 면접 화면으로 변환해주는데.. 나에게 "왜 이렇게 긴장을 안하세요...?" 라고 했다.. 나는 무심결에; "아 이미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있어서요..." 라고 답했다;ㅎㅎㅎ..  그러고 물 한잔 달라고 부탁드렸다...... 임원 면접은 묻는 이야기에 막힘 없이 답변드렸고, 직무 면접은 두 질문 정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진짜 모르는 질문이였다. 아는 척 할려해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사실 탈락을 예상 했었다..
 
 삼성의 일정들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고... "에휴. 뭔 삼성이냐~ 그냥 잘 다니다 탑증권 가즈아" 라고 늘 되새겼다.. 그리고 진짜로 탈락을 예상했다. 99%.... 딱 1% 기대했었다. 직무면접에 답변을 못드린 것도 있고... 임원면접에서도 너무 간략하게 말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때문에...
 
 결과는 합격이였다.
 
 회사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사무실이라 눈물을 흘릴 수 가 없어서 참고 또 참았다. 믿기지 않아 10번 넘게 사이트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주변에 소식을 전하며 엄청나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퇴근 길이 그렇게 신나고 심장이 쿵쾅거린 적은 처음이었다. 계속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면서 퇴근했다... 집에가자마자 엄마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ㅎㅎㅎ
 
 그리고 지난 2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중소의 서러움도 느끼고, 취준 하면서 느꼈던 서러움.. 마음 고생했던 날들.. 회상이 되면서 눈물 두 방울 정도 흘린 것 같다 ㅎㅎ..
 
 군대에서 정말 친한 내 동기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었다. "해준, 너는 너가 목표하는 건 다 이루는 것 같아.." 이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목표로 하면 이룰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목표라는 것은 누구나 설정할 수 있고..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준비해 나간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산증인이다. 나는 정말 '삼성'이란 회사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물론 단번에 준비한 사람에 비하면 비록 느릴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도전했던게 합격의 길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또 새로운 시작을... 시작한다.! 새로운 목표를 찾고 또 그 목표를 이루러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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